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887년 3월 경복궁에 최초의 전등이 켜지고 1898년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인천에서 전기 사업의 시작은 1905년 6월 각국 외국인이 모여 공동 출자한 인천전기주식회사가 시초다. 주주 총 인원 79명 중에서 일본인 18명, 서구인 13명, 청국인 8명이었다. 자본금 12만 5000원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1906년 인천이사청의 특허를 얻고 지금의 중구 송월동 2가 한국전력 인천지점 창고 자리에 발전소를 차렸다. 직류발전기 2대, 100㎾ 규모의 화력발전이었다.
인천전기가 영업을 개시한 것은 1906년 4월이었다. 당시는 러일전쟁 이후 호황기여서 전등 수요도 폭증했다. 1906년 말 2934개였던 등(燈)이 1907년에는 4083개로 확장됐다. 하지만 1907년 몇 차례의 화재, 경기불황의 여파에 따른 전기료의 체납 등이 계속돼 1912년 7월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日韓瓦斯電氣株式會社)에 22만 5000원에 매각됐다. 이후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는 1915년 경성전기주식회사로 변경됐고 1922년 7월에는 인천의 발전소를 폐지하고 서울 용산에서 인천으로 송전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하룻밤에 5차례나 전기가 나가는 사고가 빈발하는 등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고 사용가도 적었던 인천의 전기사업은 1933년에 이르러 활성화 되어 1만7000여 가구에서 4만3000여 등(燈)을 사용했다. 주요 사용자는 정미업, 철공업, 인쇄업, 제분업, 제면업, 음료수 제조업 등이었다.
쌀 한 되에 18전, 쇠고기 한 근에 40전 하던 당시에 반야등(半夜燈) 16촉 1등 1개월 사용료가 2원, 종야등(終夜燈) 16촉 1등 1개월 사용료가 3원이나 되는 등 1930년대 전기료는 서민들이 사용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에 따라 도전(盜電)이 빈번했다는 신문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그 후 인천의 전기사업은 동면기를 거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던 1967~1971년에 이르러 부평내연발전소, 인천화력발전소, 경인에너지 등 3개 화력 발전소가 건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