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엔 ‘버마’로 친숙한 나라... 축구로 한때 한국 괴롭혀
2021년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수많은 미얀마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의 규탄 속에서도 군부 정권은 눈하나 깜박 않는다. 미얀마는 버마로 불러야 중장년들에게 더 잘 와닿는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 한국 축구와 쌍벽을 이룰정도로 아시아에서 강했고, 버마 축구가 한국을 위협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얀마 군사쿠데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2년 미얀마에서 첫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번 쿠데타도 첫 쿠데타와 연관이 없지 않다. 1962년 미얀마 장군 네윈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는 화교 출신의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었다. 1911년생이었던 그는 영국과 일본과 식민지였던 미얀마를 독립시키기 위해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1948년 2월 미얀마군의 최고사령관이 되어서 실력자로 떠오른다.
1958년 당시 총리로부터 내각의 총리로 일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네위는 총리 불신임을 막아내는 등 활약한다. 1960년 총선거에 승리한 우 누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그러나 1962년 버마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잡는다. 이 쿠데타는 미얀마 군부가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군부독재를 펼치는 신호탄이 된다. 당시 미얀마 국민들은 쿠데타 반대 시위를 벌였다. 랑군 대학에서 1962년 7월 시위가 발생했지만 군대가 출동하며 강경 진압에 나서 진압했다. “만일 이런 시위가 나에 대한 도전이라면, 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답해 주겠다”고 국민에 선전포고를 했다.
1964년 국호를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바꾸고 일당제 사회주의 군사 독재체제를 수립한 네윈은 쇄국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반외세주의 이념을 내세워 버마족을 우대하고 소수민족들을 더욱 차별하고 탄압했다. 이후 60여년간 미얀마는 세계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시 쿠데타에 휘말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