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6월 전격적으로 화폐 개혁이 단행됐다. 6종(500원, 100원, 50원, 10원, 5원, 1원)의 새로운 화폐가 발행됐다. 기존의 ‘환’ 표시 화폐는 유통이 금지되고 10 대 1로 교환되는 ‘원’ 표시의 화폐가 새로 선보였다.
500원권에는 남대문, 100원에는 독립문, 50원에는 해금강의 모습이 그려지는 등 화폐 도안도 바뀌었다. 10원과 5원, 1원의 소액지폐에는 한국은행의 휘장 외에 특별한 도안은 실리지 않았다.
경제개발에 목을 걸었던 군사정부는 돈이 필요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동결되거나 숨어있는 자금을 찾아내 사용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일반인이 교환 가능한 금액은 5천환 (500원) 뿐이고 그 이상 금액은 은행에 1년 후 찾을 수 있는 통장 저금을 하든지 산업개발공사 주식으로 바꿔야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숨어있는 돈을 나오게 하여 했으나 나온 돈은 예상 금액의 20%에 불과했다. 오히려 돈만 묶이게 됐다. 중소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사회적 혼란이 닥친다. 자금경색으로 생산활동이 위축되는 등 경제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오히려 악성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다. 재계는 죽겠다고 하고 미국은 대외 원조를 중단 하겠다고 협박했다. 생활비만 한 사람에게 정해진 한도로 은행권을 바꿔준다고 했다. 사회적 불안감이 커졌다. 통금 시간까지 앞당겨지며 귀가하는 시민들이 기존 구권으로는 택시 기사가 승차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며 많은 혼란이 일어났다. 결국 정부는 은행 입출금을 자유롭게 풀어 주고 산업개발공사를 폐쇄하는등 한달만에 개혁을 철회한다.
화폐개혁은 재무부 장관 주도하에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됐다. 새 화폐는 영국에서 제작되어 화학물질로 위장해 비밀리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은행총재도 몰랐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군사 정부의 실패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