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시리즈)“수출만이 살길이다”... 1964년 수출 1억달러 달성
수출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이끈 견인차...지금도 수출 총력전
“수출만이 살길이다”“가난을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다”. 군사정권을 벗고 1963년 대선으로 민간인으로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보릿고개를 넘고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강력히 밀어붙인다. 1964년들어 적극적으로 수출주도형 정책을 펼친다. 미국의 도움없이 반드시 1억불 달러 수출 달성이 지상목표였다. 마침내 1964년 11월 30일 사상 처음으로 수출 1억불을 돌파했다. 정부는 이날을 ‘수출의 날’로 지정했다.
1961년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1962~1967년)계획이 수립하면서 수출진흥이라는 정책목표도 함께 세운다. 돈도없고 자원도 거의없는 대한민국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려면 수출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1963년부터 수출을 밀어붙인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해 수출액이 844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정부는 1964년 목표를 1억2000만 달러로 높였으며 마침내 11월 30일 1억 달러를 넘어섰다. 연말까지의 수출은 1억2900만 달러였다.
그해 12월 5일 개최된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제1회 수출의 날’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에는 각 공단의 근로자들이 초청됐으며, “우리 모두가 뛰어난 우리 제품을 만들자 내보내자 벌어들이자”는 ‘수출의 노래’(황문평 작곡)가 불리어졌다.
조국 근대화에 경제에 매진했던 박대통령의 수출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박 대통령은 예고 없이 무역을 담당하는 코트라를 찾아 직원들에게 수출실적을 물어보곤 했다고 한다. 수출과 관련된 곳이면 박 대통령 특유의 불시방문이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수출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끈 견인차였다. 지금도 우리는 수출에 목을 메고 있다. 월 수출액과 수입액이 매달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해지고 있으며 이 변화 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출이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언론은 유난히 목소리를 높인다.